문화 감상/영화 감상

딱 에머리히표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인디펜던스데이 : 리써전스>

셀디 2016. 6. 23. 18:50

※ 전작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백악관을 그냥 날려버리는 과감함에 놀랐던 20년전 본격 외계인 침공영화 <인디펜던스데이>의 후속편이 돌아왔다. 외계인의 규모는 더 거대해졌고, 더 지능적으로 지구인을 공격하는 영화이다. 이 작품은 파괴왕 롤랜드 애머리히를 대표할만한 작품 중 최상위에 손꼽히는 작품의 후속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아쉽게 윌 스미스가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20년 전 주요 배역들이 대다수 그대로 등장하여 당시의 향수를 느끼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도 어필할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자, 먼저 에머리히 작품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어떤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관객들을 영화에 빠지게 하느냐가 아니라 그런 거 신경 쓸 틈도 없이 보이는 모든 걸 파괴되는 말초적 비주얼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순간 어느새 영화가 끝나는 그런 류의 영화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끔 그가 <투머로우>처럼 멋진 스토리텔링과 의외의 결말로 관객들을 놀래키기도 했지만 그건 단 한번으로 끝난 이야기다. 그래서 혹자는 <투머로우>를 애머리히가 약빨고 만든 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전작에 지구의 컴퓨터 바이러스로 외계인을 무찌르는 허무맹랑한 결말을 보여줬던 만큼 이번에도 어떤 허무맹랑한 방법으로 외계인을 무찔러도 이상할 건 없는 영화라는 마음가짐은 누구나 가질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말이다.

 

 

설마 에머리히가 지구가 망하는 스토리에 희망도 꿈도 없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면서 결말을 내진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알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결말로 반전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시원하게 부수고 시원하게 정리된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있었지만 영화는 그런 어두운 부분 보다는 밝은 부분만 비춘다. 이 영화에서 심오함이나 철학, 인류애 따위를 찾는 건 비상식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외계인이 처들어왔으니 지구방위대가 맞서 무찌르는 어린이용 만화영화에 나올법한 스토리를 영화에 만든 것일 뿐이니 말이다.

 

 

그런 단순함 속에서도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이 있다면 20년 전 배우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투기 모는 에이스 파일럿 대통령도 그대로 등장한다. 늙고 병들었지만 그래도 한 때 잘 나가던 그가 활약하는 건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그게 바로 재미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윌 스미스가 빠진 부분은 너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구의 조화도 나쁘진 않았다.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의 동생 리암 햄스워스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윌 스미스의 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상 이번 파일럿 주인공은 러브라인까지 들어가 있는 리암 햄스워스이다. 딴 이야기긴 한데 언젠가 리암과 크리스를 한 영화에서 볼 날도 왔으면 한다.

 

 

스케일도 커지고 CG도 당시에 비해 많이 발전을 했다. 그런데 감흥은 떨어졌다. 이제 사람들의 눈은 더 이상 높아질 곳도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에머리히의 파괴성애에도 사람들이 익숙해졌다. 과거엔 그냥 볼거리만 있어도 '우와'를 연발하며 몰입했지만 이젠 이정도 자극만으로 몰입감을 이끌어내기엔 부족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에머리히는 CG가 진보한 것만큼 진보하지 못했다. 그는 그때 그대로 정체되어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 감독이라는 게 발전하는 경우를 보기 힘든 직업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에머리히는 자신만의 강점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감독이긴 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부족한 시대가 된지 좀 지났다.

 

 

 

제목부터가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인디펜던스 데이>인 것만큼 그의 영화를 보면 대부분 미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투머로우>가 괴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품도 미국이 중심에 있고 미국 만세를 외치고 있지만 전작보다는 그 힘을 줄였다. 그리고 헐리우드가 최근 가장 의식을 많이 하고 있는 중국 시장 때문인지 중국 배우들의 캐스팅이 종종 있다. 이 작품에는 안젤라 베이비가 출연하며 영화의 얼굴 마담을 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중은 높았고,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던 기존의 아시아 여배우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최근 중국 여배우들이 깨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트랜스포머4>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보다 커진 비중으로 볼 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바이다. 이병헌의 헐리우드 진출과 더불어 미국산 영화에서 아시아인의 비중이 늘어가는 건 반갑고 긍정적으로 바라볼만 하다. 언젠가 윌 스미스처럼 아시아 배우가 원톱으로 헐리웃을 이끌 날이 오길 기대하게 만드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이연걸이나 성룡이 해내긴 했지만 액션(무술) 전문이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할 줄 아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유쾌한 영화는 에머리히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보면 적어도 중간은 하는 영화라 생각된다. 여전히 파괴의 미덕에 빠져서 강약 조절에 실패하는 그이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순수한 동심의 마인드(?)로 감상하면 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은 이런 영화로 기분 전화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