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애니 감상

병맛 레전드 오인용의 첫 극장판 애니 <만담강호>

셀디 2017. 3. 22. 21:57

2000년대 초반 초고속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처럼 유튜브나 기타 동영상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 플래시애니메이션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고 그 인기도 엄청났다. 대표적으로 <엽기토끼 마시마로>,<뿌까>,<홍스구락부>,<우비소녀> 같은 작품들이 생각난다. 꽤나 고퀄러티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던 시기였다. 거기에 정점을 찍었던 게 바로 '오인용'이 아닐까 싶다. '오인용'은 애니메이션 이름이 아니라 플래시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창작집단이었다. 특히 그들은 <연예인지옥>,<중년탐정 김정일> 등의 시리즈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제작이 절대 쉽지 않은 만큼 새로운 한 편이 업데이트 되기까진 주기가 꽤 길었지만 팬들은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 이상으로 그들의 신작을 목 놓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의 열성 팬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작품을 보기가 힘들었다. 업데이트 주기도 느려지고 그새 세상은 많이 변해가고 있었고 팬들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제 유튜브 안에는 무한으로 펼쳐진 재밌는 영상들이 난무하니 넷상에 볼거리가 없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때처럼 꼭 누군가를 찾아야만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이 활동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었다. 가끔 업데이트도 했고 신작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할 <만담강호>이다. 바로 오인용이 만든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그것도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한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첫 국내 극장용 플래시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사실 그동안 그들의 인기를 이끌었던 <연예인지옥>이나 <중년탐정 김정일>의 장편 버전이 아닌 게 아쉬웠지만 간만에 오인용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대가 되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포스터만 보면 무슨 온라인 고스톱 게임 홍보물 같은 느낌이 든다.

플래시 애니 느낌을 그대로 살린 포스터다.

오인용이 장편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목소리 출연만 했을 뿐이지만 <아치와 씨팍>이라는 애니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다.

 

 

<만담강호>는 중국의 어떤 객잔에서 벌어지는 무협(?)코믹물이다.

 

 

여전히 오인용스러운 병맛스러움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심히 변태스럽고 똘기 충만하며 무자비하게 폭력적이기도 하다.

아주 당당한(?) 19금 애니라 할 수 있겠다.

요즘 19금 병맛 하면 귀귀 작품을 많이 떠올리는데...

그런 스타일의 원조가 아마 오인용이 아니었나 싶다.

 

 

가끔 멀쩡해보이는 외모의 인물도 나오지만 그들도 그냥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중 제 정신인 인물은 없다고 보면 되겠다.

오인용의 작품이 늘 그러했듯이...

 

 

객잔 안에 온갖 고수들이 몰려들면서 알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담(이라 읽고 욕설이라 말한다)으로 티격태격하는 데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한다.

 

 

<만담강호>는 기존 오인용 작품의 패러디는 물론 유명인사라든가 몇몇 영화의 패러디 장면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좋은 소리만 하긴 힘들다. 분명 시도는 박수쳐줄만 하고 팬으로서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다 보고 났을 땐 아쉬움 또한 크게 남았다. 가장 큰 게 바로 장편으로 확장하는 힘의 부족이었다. <만담강호>는 부분 부분으로 보면 그들이 단편 플래시애니메이션을 제작했을 때처럼 번뜩이는 병맛 요소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보다보니 그 힘이 점점 부치기 시작했다. 결국 뒷심 부족으로 후반에는 상영관에 웃음이 많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엔 욕심이었는지 제작 중 힘에 부쳐서인지 다소 동떨어진 작품을 감상한 기분이 들어 이질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앞서 웃었던 웃음이 헛웃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극장을 나선 뒤 하루가 지난 지금 다시 이 작품을 곱씹어보니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작품을 스크린이든 인터넷이든 어디서든 계속 보고싶단 생각만 남았다. 여전히 찰진 욕을 시전하는 걸죽한 목소리의 정지혁(정지혁 병장으로 더 유명할 거다)과 반전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김창후(이병 김창후로 더 유명할 거다) 등의 친숙한 오인용 멤버의 목소리와 연기, 병맛 시전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시드락에게 작품을 바친다는 자막이 나와서 무슨 일인가 찾아보니 2013년 오인용의 멤버 중 하나인 시드락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들과 멀리 있는 동안 그런 일도 있었다니 팬으로서 아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앞으로도 오래 활동해주길...

 

 

이건 영화를 보고 득템한 <만담강호> 화투!!! 뜻밖의 득템이라 너무 좋았다.

이건 영구소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