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영화 감상

위대한 퇴장 <록키 발보아>

셀디 2016. 4. 25. 19:5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복싱 기사가 스포츠란에서 인기를 끌었다. 바로 카자흐스탄 미들급 프로복서 게나디 골로프킨의 기사다. 경기 전부터 한국계라는 점으로 이슈화를 시키더니 결국 시합에서 미국의 도미닉 웨이드에게 일방적인 폭행(?) 끝에 2라운드 KO 승을 거둬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지난해 많은 팬들을 실망시켰던 세기의 대결 메이웨더 대 파퀴아오 이후 그 갈증을 해소시키는 경기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너무 일방적이라 오히려 그것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 세기의 대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저돌적인 화력전을 볼 수 있어서 복싱 팬들을 열광케 했다. 특히 골로프킨은 가드를 뚫어버리는 잽을 가진 하드펀처로서 과거 전성기 파퀴아오 시절 만큼 화끈한 선수로 유명하다. 골로프킨은 지금이 전성기라 보지만 34세로 적은 나이도 아니기 때문에 복싱계에서는 최대한 그를 띄워주는 것이 복싱의 높은 인기를 지속시켜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한 인기면에서는 몇몇 대형 대결의 이슈화를 제외하고는 UFC에 완전히 밀려버린 복싱이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아직도 복싱이 상업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물론 대전료나 전체적인 저변으로는 여전히 복싱이 종합격투기를 훨씬 앞서고 있다) 그런 복싱 경기를 한 차례 보고 나니 갑자기 무언가 용솟음 치는 기분이 들었으나,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던 차에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복싱 영화의 전설인 록키 시리즈이다. 록키 시리즈는 <록키 발보아>까지 총 6편이 제작되었다. 1편부터 5편까진 이미 오래전 다 섭렵을 한 상태였지만 몇년 전 개봉한 <록키 발보아>는 아직 보지 못한 상황이라 이때다 싶었다. 역시 이번에도 유플릭스를 통해서였다.(유플릭스 홍보대사 되어가는 듯)

 

아래 록키 테마를 들으며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록키 시리즈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인생과도 같은 영화이다. 그걸 다시 한 번 환기시켜주는 작품이 십수년이 지나 만들어진 <록키 발보아>라 볼 수 있다. 이미 은퇴를 한 상태에서 자신이 훈련시켰던 현역 프로복서와 골목길 싸움을 했던 5편에 이어 이번에는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서인지 직접 링까지 오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재밌는 건 이 영화에서 상대 복서로 나온 메이슨 딕슨이라는 선수가 바로 위에 언급한 골로프킨 같은 선수라는 것이다. 실제 영화속에서 그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선수로 군림을 하고 있고, 30승대의 무패 복서라는 점과 압도적으로 높은 KO율을 가졌다는 것에서 닮은 점이 많다. 물론 경기 스타일은 딕슨이 다소 메이웨더 스타일을 녹여놓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캐릭터는 메이웨더에 더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반대의 상황 또한 벌어진다. 딕슨이 너무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는 탓에 복싱의 인기가 줄어든 상황인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한 선수가 너무 강하고 나머지가 들러리가 되면 인기가 낮아질 수는 있지만, 현재의 골로프킨과는 반대의 상황인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왕년의 챔피언인 록키 발보아가 그 식어가는 복싱의 인기를 살리기 위해 선수 복귀를 하는 과정을 연출해 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계단 오르는 장면

메인 테마와 함께 하는 훈련 장면은 언제나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한다.

 

 

이 영화는 과거 록키 시리즈에 비해서 드라마 부분에 할애를 많이 한다. 록키 시리즈의 하이라이트인 연습 장면이나 시합 장면은 마지막에 몰려 있을 정도로 스포츠가 주는 복싱 그 자체의 재미 보다는 은퇴한 전설의 훗날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많은 변화를 통해 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록키의 아내인 애드리언은 고인이 된 상황이며, 현재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경기 후일담을 들려주는 낙으로 살 정도로 어찌보면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록키는 아내의 죽음 때문인지 소원해진 아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영화 <레슬러>에서 초라한 말년 레슬러를 연기한 미키 루크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록키는 울면서 내 안에는 아직도 야수가 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이 영화 포스터에 있는 전 메이저리그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가 했던 명언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로 자격을 다시 취득하고, 조촐하게 지역 자그마한 대회에라도 나가면서 자신의 야수 본능을 깨우려 시도한다. 그러던 중 미디어를 통해 딕슨과의 가상 대결이 큰 관심거리가 되면서 실제 이벤트성 경기까지 성사가 된다. 한 복서라는 측면에서 보다는 한 은퇴한 평범한 사람을 쫓는 그림을 이 영화는 그리고 있는데, 이 메시지는 은퇴한 자들뿐만 아니라 현실에 찌들어 그만 포기하고 말거나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메시지는 위에 언급한 요기 베라의 명언 말고도 록키가 아들에게 하는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록키는 아들에게 '얼마나 강한 펀치를 때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한 펀치를 맞고도 일어나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얘기한다. 록키 하면 항상 많은 펀치를 허용하면서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결국 승리를 쟁취하는 경기를 해왔다. 그건 비단 복싱 경기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도 적용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실베스타 스텔론은 이 작품을 찍는 동안 정말 록키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대망의 엔딩을 판타지스러우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재주를 선보인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스텔론도 결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어쩌면 결론을 그렇게 정하고 시나리오를 써나갔을지도 모르지만) 록키는 딕슨을 맞아 10라운드 대결을 하면서 역시 이전과도 같은 투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과는 판정패를 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의 패배가 전혀 슬프지 않다. 록키는 경기가 끝나자 마자 챔피언에 대한 예우를 보인 후 팬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물론 그의 퇴장이 도망같은 건 아니다. 그의 야수가 더이상 그에게 없음을 보여주는 홀가분한 퇴장인 것이다. 마지막 판정 결과가 딕슨의 손을 들어준 후에도 록키는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팬들과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울려퍼지는 록키의 메인 테마곡은 영화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록키의 뜨거운 심장의 울림을 전해주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이상적인 엔딩과 록키라는 한 인간의 일생을 심도 있게 그린 괜찮은 작품이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딕슨이 록키와의 대결을 피하다가 갑자기 하게된 과정이라든가 록키 또한 보다 세밀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줘야 할 장면 몇 곳이 생략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에서도 기존 록키 시리즈가 다 그렇긴 했지만 프로복서이자 챔피언인 사람들이 위빙 동작 하나 없이 양측 모두 너무 얼굴을 샌드백처럼 들이밀고 있다는 점에서 복싱을 보는 눈이 높아진 지금 시점에서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한 부분을 감각적인 편집으로 무마시키려 한 것 또한 더욱 거슬렸다.

 

이제 록키가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을 것같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그의 한 때 라이벌이었던 아폴로의 아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으로 록키가 등장하는 <크리드>가 나왔다. 아직 국내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내 반응이 상당히 좋았으니 부디 국내에도 꼭 배급되길 기대해 본다. 이처럼 록키 시리즈는 실베스타 스탤론이란 한 배우의 과거이자 현재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실제 삶의 모습을 투영시킨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순히 스타 배우의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속 우리가 보고 느껴야 할 것이 있음을 스텔론은 설파하고자 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요즘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좌절한 적이 많았다. 마치 세상이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그 때 마다 나도 오뚜기처럼 일어서서 재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현재도 진행형이며 언제 또 좌절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그렇지만 록키가 했던 말처럼 '얼마나 세게 때리느냐 보다 맞고도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뚝심'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뚝심이 함께 하길 바란다.

 

 

 

★사족으로 경기 장면 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헤비급 복서 마이크 타이슨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과거 선수로 록키 마르시아노나 무하마드 알리 같은 실존했던 전설들도 언급이 된다. 그리고 타이슨 시기까지도 선수 생활을 했던 조지 포먼도 언급이 되는데... 타임라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하마드 알리와 록키 마르시아노는 록키 발보아 훨씬 이전 세대 선수이니 이해가 가지만 마이크 타이슨이나 조지 포먼은 록키 발보아와 동시대의 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단 한 차례도 영화속에 등장하지도 않았고 위협적으로 언급되지도 않았다. 체급이 다르면 모르겠는데 같은 헤비급인데.... 뭐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에서 이번에 깜짝 출연을 한 것이겠지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