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영화 감상

치유의 영화 제이크 질렌할,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

셀디 2016. 7. 15. 20:03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본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블라인드 시사회로 접한 영화로 정보 발설을 하지 않아야 했기에 당시 포스팅을 하지 못했다. 당시 바로 글을 남겼으면 나름 나의 뇌리에 꽤 강한 충격을 줬던 영화였기에 쓸 내용도 많고 보다 좋은 글이 되었을 같지만 지금은 그 느낌이 조금 희미해졌다. 그래도 당시의 감상을 역으로 따라가보며 짧막하게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다.

 

 

처음 포스터를 비롯해 아무런 정보 없이 제목만 접했을 땐 액션영화를 떠올렸다. 이미 <데몰리션맨>이란 액션영화가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연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감독이 누구인지 알게된 후 그런 생각은 바로 접어야 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와일드>를 연출한 장 마크 발레 감독이라니. 그라면 분명 인간의 심리를 건드리는 영화를 찍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바... 과연 영화 제목 '데몰리션'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제이크 질렌한이 연기한 데이비스는 도입부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만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지만 신기하리만치 그는 상처 하나 없이 홀로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가 그 뒤로 보이는 행동은 심상치가 않다. 병원에 찾아온 장인 어른 앞에서도 마치 남의 일인냥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자판기를 이용하고 자판기가 돈을 삼키자 자판기 회사 연락처나 찾고 있는 남자다. 그 후로도 그는 마치 만사 다 귀찮은 허무함의 극을 달리는 인물을 연기한다. 처음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아내가 아닌 남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혹은 그가 처음에 읊조리 듯이 얘기하는 아내의 존재는 죽음 이전부터 그에게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가 아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했던 냉장고 좀 고쳐달라는 말에 냉장고를 뜯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고 해체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데이비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자판기 문제로 통화하게 된 자판기 회사 직원 캐런(나오미 와츠)를 만나고 나서 이야기의 흐름이 급 진행이 되기 시작한다.

 

 

데이비스는 어느덧 캐런과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데이비스는 아내의 사고에서부터 자판기 사건까지 하나 하나 그의 사적인 이야기를 밑도 끝도 없이 그녀를 상대로 뱉어낸다. 그런 그를 캐런은 그대로 받아준다.

 

 

캐런에겐 사춘기에 또래 보다 일찍 접어든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작품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줬던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극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데이비스의 행동이 왜 그러했는지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점점 뚜렷해진다. 그와 동시에 나도 그의 심리에 극적으로 동감하는 순간에 맞닿아 감동을 하게 된다. 그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내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그의 눈물을 보고 그만 나도 찔끔 눈물을 글썽였다. 이 영화는 어쩌면 익숙함에 대한 영화이다. 아내는 죽기 직전에 냉장고가 고장났다면서 좀 봐달라고 한지가 언젠데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며 데이비스를 타박한다. 그리고 냉장고에는 그녀가 남편 보라고 붙여놓은 메모 또한 남겨있었다. 아내가 죽기 전 데이비스는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죽고 나서야 그녀의 메모를 보고 냉장고를 분해했고, 그 계기로 그는 그런 비상식적인 해체 행동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익숙함에 길들여져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무시하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 익숙함은 함께 사는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 혹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데이비스가 슬퍼하지 않았던 건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아주 짧막한 1초 정도의 찰나로 아내와의 추억을 보여준다. 그에게 그런 찰나의 순간이 자꾸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님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그 익숙함에 지나쳐서 생겼던 후회와 미련을 결국 익숙했던 것들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그 슬픔을 표출하려 했던 것이다. 오히려 극도의 충격과 슬픔으로 그는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슬픔과 정면으로 맞닿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에게 일반적인 슬픔이 찾아오고 결국 통곡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장 마크 발레는 이번에도 숙련된 솜씨로 연출했다. 거기에 이런 분야에서 절대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는 제이크 질렌할은 인물의 심리를 아주 효과적으로 끝까지 연결해서 관객이 감정선을 놓치지 않도록 했다. 

 

굉장히 우울하고 무게감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중간에 나오는 제이크 질렌할이 거리에서 음악에 몸을 맡겨 춤을 추는 장면은 괜히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이 나는 장면이었고, 가끔은 모든 걸 과감히 파괴하는 그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는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슬픔을 정면으로 인정하게 되지만 그때서야 해피엔딩으로 이를 수 있는 출구 또한 찾게 된다. 결론은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가슴엔 강한 울림이 남고 머리는 산뜻히 정리가 되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있을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익숙함에 길들여져 놓치기 쉬웠던 것을 상기하는 차원에서 이 영화는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