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영화 감상

게임 팬이 바라본 영화판 <어쌔신 크리드>

셀디 2017. 1. 19. 16:14

※ 영화와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소설과 코믹스, 게임 등의 원작이 영화화 되었다. 그 중에 유독 원작의 힘을 이어받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장르가 있는데 바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다. 극히 일부의 작품이 그나마 게임의 팬들과 영화 관객들에게 좋은 평을 듣곤 했지만 그 역시 상대적으로 좋은 것일 뿐 영화 자체로 봤을 때 수준급이란 평을 듣기엔 무리가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은 꾸준히 제작 되어 왔다. 2016년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린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워크래프트>가 개봉을 했고 역시 팬층이 두터운 게임인 <어쌔신 크리드>가 개봉을 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기대를 저버리고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올해 그 중 나머지 한 작품인 <어쌔신 크리드>가 뒤늦게 국내에 개봉하였다. 난 이 게임 프랜차이즈를 즐겨했던 게이머로서 상당한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쌔신 크리드> 국내 포스터

 

<어쌔신크리드>는 2007년 유비소프트에서 개발한 오픈월드형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첫 작품을 선보인 이후 최근 <어쌔신크리드 : 신디케이트>까지 콘솔, PC, 모바일을 넘나들며 수많은 시리즈를 양산한 유비소프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첫 작품의 경우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지만 판매의 호조가 이루어져 후속작 개발의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냈으며, 후속작은 게임의 평가면에서도 아주 우수한 작품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애니머스란 기계를 이용하여 선조 암살자의 삶에 동기화 되어 에덴의 선악과를 찾아가는 스토리가 아주 강렬했다. 그 과정이 실제 존재하는 도시와 역사적 사건, 실존 인물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게이머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거대한 음모론이라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결합시켜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였기에 이 게임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물론 엉뚱한 감독(우베볼이라든지!)이나 배우들이 출연한다면 게임팬들이 먼저 말리고 인터넷 탄원이라도 했겠지만 마이클 패스벤더가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 팬들은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기대감을 키워갔다. 그리고 <어쌔신 크리드>영화화를 맡은 감독은 저스틴 커젤이다. 많은 작품을 찍은 감독은 아니지만 바로 전작인 <맥베스>에서 훌륭한 연출을 선보였기에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감독이었다. 그리고 원제작사인 유비소프트의 개입으로 게임팬을 고려치 않은 연출자 멋대로의 해석으로 원작팬들의 원성을 살 가능성 또한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게임의 첫번째 작품 포스터

 

먼저 공식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을 때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린 코스튬이 그러했고 15세기 스페인을 담은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2편의 분위기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암살자들의 상징인 암살검을 이용한 암살 장면이나 게임플레이의 상징과도 같은 신뢰의 도약(Leap of faith)의 구현만으로도 나는 흥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게임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적으로도 너무 멋진 연출 장면이기 때문이다.

 


원작과 시대적 배경을 잘 살린 코스튬

 

하지만 북미에서 개봉 직후 썩어가는 로튼 토마토지수나 팬들의 평점들을 보고있자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게임원작 영화의 성공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작급 영화가 나올 것 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게임원작 영화의 한계라는 오명을 벗어날 것이란 믿음이 어느정도 쌓였던지라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게임의 팬으로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선 배길 수가 없었기에 개봉 후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속 앱스테르고는 게임보다 암울한 느낌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게임과 다르다. 게임속 세계관이 워낙 방대한 탓에 굳이 같은 인물일 필요는 없었다. 충분히 해볼만한 설정이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 원작을 충실히 따르느냐 혹은 재해석을 통해 충분한 각색을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게임의 경우 각색에 있어서도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다. 그 세계관만 잘 따르면 다른 이야기로 가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또한 후자를 선택했다. 전혀 다른 주인공에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을 따르고 있다. 게임 같은 경우도 시리즈별로 다른 시대와 인물을 내세우고 있으니 이상할 것이 전혀 없기에 어떻게 보면 영화화 하기 더욱 좋은 게임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시대와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게이머들의 원성을 들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적 애니머스


게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애니머스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애니머스는 원작 세계관에서 중추의 역할을 하는 기술의 집약체였다. 반면 접속 방식은 영화 <인셉션>의 '드림머신'처럼 간단한 방식이다. 잠자듯이 기계에 몸을 맡겨놓고 누워있으면 과거의 조상과 동기화가 되는 식이다. 반면 영화는 애니머스를 거대한 기계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동기화가 된 조상과 똑같은 동작을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의 문제가 시작되었다. 어찌보면 단순한 표현 방식의 문제인데 이 표현방식의 차이가 나비효과처럼 영화의 플롯과 원작의 장점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아귈라의 동료 암살자 마리아

 

애니머스에 몸을 맡기는 순간 주인공 칼럼 린치(마이클 패스벤더)는 암살자 아귈라가 된다. 현실 애니머스에서도 그는 아귈라가 보는 모습을 관리자들에게 보여주고 아귈라로서 행동하게 된다. 이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 액션 장면에서 자꾸 과거 아귈라와 애니머스에서 분투 중인 린치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 교차 편집 방식은 애니머스의 구동방식을 보여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임은 분명했지만 이런 편집과 연출이 영화 끝까지 구현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게임에서도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지만 각 편의 주요 이야기는 과거에 치중하고 있었다. 과거에 동기화 되는 순간 이야기 흐름을 위해 현실로 돌아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과거 장면에서조차 현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생긴 또 하나의 문제점이 정작 이야기가 녹아있어야 할 과거는 단순히 액션만 남고말았다. 그냥 이미지의 나열일 뿐이었다. 이건 게임팬으로서 생각해도 아쉬운 부분이고 영화의 플롯으로 봐서도 흥미요소에 있어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이었다.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기 전 홍보성으로 제작된 조승연 작가의 영화 가이드 영상이 있었다. 그 가이드는 영화속 배경이 되는 15세기 스페인의 종교재판 등을 꽤 흥미롭게 다루면서 역사적 사실을 인지시켜주지만 실제 영화에서 역사는 쏙 빠지고 장면만 남았으니 그 홍보영상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어떻게 보면 영화 보다 그 홍보영상이 더 재밌을 수도 있겠다. 게임에서 조차 과거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유명한 인물을 등장시켜 픽션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놓은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즉 포인트를 놓쳐버렸다. 애니머스 기계의 구동장면을 보여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했는지 드라마가 없어진 과거는 포장만 그럴 듯한 과자상자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애니머스의 구동방식을 통해 후반 장면들의 설득력을 얻으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짐작이 간다. 게임에선 단순히 조상의 기억에 동기화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암살자의 DNA를 물려받은 주인공 데스몬드 마일스가 점점 조상의 초월적인 신체능력과 암살기술을 갖게 된다는 설정인데 그 부분을 좀 더 그럴 듯하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해도 구동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했어야 하지 극의 전체에 끼어들며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진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파쿠르 장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영화속 파쿠르 장면이 제법 잘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게임에선 파쿠르가 게임플레이의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한 요소이다. 이 파쿠르라는 건 여러 액션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쓰여왔고 <야마카시>라는 본격 파쿠르 영화도 있었을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맨몸 액션이다. 게임은 이 파쿠르를 극한으로 밀어붙여서 인간이 실제로는 범접하기 힘든 수준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걸 영상화 한 것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물론 이 역시도 기대만큼 만족스럽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칭찬할 부분을 찾는다면 그나마 이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작품의 액션은 초반 나왔던 마상액션도 그렇고 파쿠르나 기타 전투씬도 부분적으론 꽤 그럴 듯하지만 큰 흐름에서 보자면 긴장감이나 몰입감이 떨어졌다. 그래서일까? 그러한 장면들이 예고편에선 아주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다.

 

 

게임 속 파쿠르 장면 

 

 

 

이런 장면도 기대했건만...

 

영화 <어쌔신 크리드>는 게임원작 영화가 하지 말아야 할 요소를 다 보여주고 말았다. 제작자는 원작의 포인트를 잘 살려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집어낸 포인트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덩어리를 외면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저스틴 커젤 감독의 전작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 외면해 버린 요소가 생각보다 필연적인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영화는 마찬가지로 게임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나 <DOA>처럼 B급 냄새 물씬 풍기는 작품은 아니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갔고, 일류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제법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 찍은 '좋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화면만 그럴 듯한 속 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워크래프트>와 <어쌔신 크리드>로 인해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한 편견은 더욱 굳어질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원작 영화 <툼레이더> 리부트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