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영화 감상

집단 감정의 어긋난 표출 <소셜포비아>

셀디 2016. 5. 9. 19:1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아프리카TV 방송에 관련된 사건 사고가 이슈가 되고 있다. 보복운전, 성관계, 폭력, 욕설 등 도를 넘어선 자극적인 방송이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으니 제재가 있어야 할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나 아직 마땅한 대책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단순히 자정능력에 기대고 있으나, 명확한 한계가 있으니 앞으로도 이 도를 넘는 방송은 계속 될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자니 몇달 전 본 영화 <소셜포비아>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SNS 등의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가 가진 폐해를 다룬 영화이다. 제목 그대로 어떤 공포증에 관련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과연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그런 집단 의식과 행동이 마땅한 것인가 하는 화두를 현대인 모두를 향해 던지는 내용이다. 마치 이 영화는 '너희들 모두가 공범이야. 아닌척 하지마.'라며 냉소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영화의 주제가 뚜렷하게 담긴 카피를 대놓고 사용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무개념 발언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레나'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여성 유저가 올린 무개념 발언이 많은 남성들의 공분을 샀던 것이 발단이다. 그 '레나'란 인물은 한 두번이 아닌 그런 발언으로 마일리지를 쌓아온 일명 네임드(잘 알려진 사람을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고시학원에서 공부 중인 남자들과 온라인 키배틀을 벌이게 되고 결국 남자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집해 '레나'와 현피를 모의한다.(물론 주먹다짐을 하러 가는 현피는 아니다) 그리고 그 모임을 주도한 BJ는 해당 과정을 모두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내는데 찾아간 '레나'의 집에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어 사건은 일파만파 커진다.

 

 

마녀사냥의 모임이 시작된다.

 

그 다음부터 그들은 스스로 이 사건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들의 과도한 마녀사냥이 자살로 몰아간 것이라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타살로 방향을 잡고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이 때의 모습은 정말 치졸하게까지 그려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의외의 스릴러적 긴장감이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변요한이 연기한 경찰지망생 지웅

 

 

자살 사건 생중계로 인해 사건이 커지자 대중들은 두번째 마녀사냥에 나선다. 바로 그 현피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신상을 털고 그들을 질책하는 것이다. 주인공 지웅도 마찬가지인데, 그의 학원 사물함에는 그를 욕하는 포스트잇으로 가득하다. 오히려 그가 경찰지망생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날아가는 화살은 두배로 날카롭다. 이 부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될 소지가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건의 중심 축인 지웅과 그의 학원 절친인 용민

 

사회 고발적인 영화인 게 다분하지만 스릴러적 요소를 잘 살리고 있어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볼 수 있는데, 의외의 반전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용민의 정체이다. 용민이 이 사건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극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이 부분에서 또 한번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진짜 한심해 보이는 무리들

이 한심해 보이는 무리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응답하라 1988>로 륜준열이 뜨기 전에 제작되었다.

류준열은 BJ역할을 정말 재수없게 잘해냈다.

이 사건의 원흉이면서 끝까지 일관된 자세로 나오느데, 그러면서도 본인은 책임에서 빠져나오는 능력을 타고났다.

요즘 아프리카TV에서 막장 방송을 하는 일부BJ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역시 개운치가 않다. 쓴내만 난다. 이 메시지가 보는 이들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자각하지 않으니까. 어디선가 관심종자들이 나타나면 그 관심종자를 까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온라인 세상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픽션이면서 실화이다. 지금도 인터넷 어딘가에선 키배틀이 벌어지고 있고, 마녀사냥이 행해지고 있을테니까.

 

참고로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는데 일전에 먼저 제작됐던 <잉투기>와 꼬집는 점이 상당히 비슷하다. 심지어 같은 감독이 연출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타일도 비슷한데, 영화 마지막 부분은 뭐 거의 데자뷰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왜 같은 영화 제작 학교에서 이런 비슷한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좀 획기적인 장르 영화 한 편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