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상/영화 감상

21세기를 대표할 한국산 걸작 호러 <곡성>

셀디 2016. 5. 15. 20:4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대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전에 <텔미썸딩>이라는 스릴러물이 있었다. 한석규와 심은하 등의 당대를 대표하던 남녀 배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이다. 영화에 대한 평이 썩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고어 스릴러물로서는 국내에서 견줄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작품이었다. 특히 단순한 전개로 뻔한 해답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라 영화 구석구석에 맥거핀적인 요소를 심어놓았기에 영화를 본 사람들끼리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한동안 한국영화에서 그런 작품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물론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그 이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란과 해석이 오가는 작품이 등장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그러하다. 지금 인터넷은 <곡성>으로 시끄러울 정도이다. 영화 감상평을 올릴 수 있는 대형 커뮤니티라면 곡성에 대한 끊임없이 올라오는 소감과 해석을 접할 수 있다. 역대급 한국영화란 찬사에서부터 과대평가 받는 쓰레기라는 글까지 다양한 글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얼마만에 이렇게 화제가 되는 한국영화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흥행이 잘되는 영화라도 이렇게 웹을 활발하게 달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뜨겁다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서도 오히려 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가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감상은 이미 이 글 제목에 한마디로 모두 집약되어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하고 있지 않다. 예고편만 봐도 공포 요소가 있는 스릴러물이다라는 느낌 뿐이다. 그렇지만 보고 나서 느낀 건 절대적인 공포 영화라는 것이다. 다만 유치하게 사운드나 순간적인 튀어나옴 등으로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뻔한 장치만 없을 뿐이다. 그걸 제외하면 그 어느 공포영화 보다도 소름 돋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화 시키자면 공포영화 중에서 오컬트 영화의 축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은 <엑소시스트>를 많이 떠올릴테고 좀 더 어린 층의 관객들에게는 2015년에 개봉했던 <검은 사제들>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곡성>은 분위기 면에선 확연히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라남도 곡성이다.

영화 제목 곡성(哭聲)은 전혀 다른 한자어로 곡소리를 뜻한다.

 

일단 영화 전체의 톤이 매우 어둡고 습하다. 낮 장면도 대다수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장면이고 실내도 최소의 조명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숲속이나 시골의 낡은 한옥집은 그런 분위기를 살리는데 한 껏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 자체만으로 영화가 전하는 전체 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암울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암시하고 있다.

 

 

초반 주인공이 사건 현장을 찾은 시간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때의 분위기는 <살인의 추억>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살짝 오버랩이 되었다.

 

그리고 <곡성>은 마을의 연쇄 사건을 그리고 있고, 심지어 경찰이 주인공이지만 절대 방점을 '수사'에 찍고 있지 않다.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현장에서 다른 경찰이 범행에 사용된 칼을 맨 손으로 집는 것을 보고 "그거 막 손으로 만지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식의 대사를 하는데 마치 전문직 입장이 아닌 아마추어나 일반인이 내뱉을만한 말투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범인 찾는 수사물과는 다르다라는 걸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살인의 추억>같은 경우에서도 형사들이 주먹구구식 수사에 전문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서울에서 온 형사로 그 부분을 희석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와 달리 이 작품은 끝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에 대해 경찰이나 형사들의 입장에서 보는 장면은 극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이다. 종구 또한 경찰 보다는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등장하는 장면이 훨씬 많으며 경찰의 역할로 등장할 때조차 그가 수사를 한다는 느낌 보다는 한 개인의 조사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이런 점에서 공포물에서 경찰들과의 수사와는 별개로 혼자 진행하는 조사를 하는 주인공들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구는 경찰이지만 영화속에선 겁 많은 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나약하고 우매한 대중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무명(천우희)의 첫 등장.

첫 등장은 마치 전형적인 마을 미친 여자애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천우희의 출연분량은 매우 적다.

실제 등장하는 씬을 다 합해도 전체 영화의 극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핵심 인물임은 틀림이 없었다.

 

 

종구는 경찰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추어(동네 친구)들을 모집해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좀비까지 등장하는데 감독은 이 부분을 일부러 다소 코믹하게 연출을 한 듯하다. 이 영화가 대놓고 웃기지는 않지만 부분 부분 코믹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라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러한 씬 하나 하나에도 큰 공을 들인 듯 영화 전체에서 분리시켜 놓고 봐도 주는 재미가 있었다.

 

 

무당인 일광역을 맡은 황정민

 

이 영화는 포스터 카피부터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 대놓고 경고를 하는데 관객들은 결국 현혹되고 마는 것이다. 그 점이 바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광(황정민)이 있었다. 황정민이 꽤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있는지 알았고 예고편에도 많이 등장하기에 상당 분량 나올 줄 알았지만 그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출연을 한다. 그렇지만 그의 등장 이후로 영화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종구에게도 현혹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관객들을 현혹시킨다. 유독 미끼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심지어 오프닝 장면도 미끼를 끼우는 장면) 그 미끼를 모두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것은 극중 인물들이 던지는 미끼이기도 하고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미끼이기도 하다. '낚시'라는 게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속이는 것을 뜻하는 식의 유머어로 통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는 그 '낚시'를 진짜 낚시하는 장면을 대놓고 보여주면서도 관객을 낚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효진이를 연기한 환희의 연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연기를 해냈다.

 

이야기의 큰 축은 남일 같기만 했던 마을의 연쇄 사건이 자기 일이 되었을 때부터 성립이 되기 시작한다. 바로 종구의 딸이 피해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오컬트 영화가 되어간다. 딸의 변화는<엑소시스트>의 그것을 능가한다. 오히려 <엑소시스트>처럼 특수 분장에 목소리 변조 같은 것이 없어 더 그럴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아이의 살기 어린 눈빛과 거침없는 욕설을 보고있자면 섬뜩하다. 그걸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 순간부터 경찰이 아닌 아버지 종구에게 감정이입이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귀신을 쫓기 위한 굿판은 <엑소시스트>의 신부들이 펼치는 퇴마의식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검은사제들>에서도 굿판이 벌어지지만 거기에선 단편적인 양념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토속 신앙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영화는 여러 종교의 요소들 또한 버무리고 있었다. 시작부터 성경 구절을 보여주는가 하면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인물로 카톨릭 신부 부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부분에서 감독이 의도했던 것을 무엇일까? 믿는 신도 다르고 행해지는 의식도 다르지만 결국엔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현혹되지 말라는 것도 그 믿음에 기인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외지인으로 등장하는 쿠니무라 준

 

 

쿠니무라 준은 일본에서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중견 배우이다.

일본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일테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익숙하진 않을 것이다.

크고 또렷한 두 눈망울, 깊게 파인 주름. 짧게 자른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등 최적의 캐스팅이었다 생각되는 배우이다.

 

이 영화가 놀라웠던 건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연출력에도 있지만 그 편집력에 있어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 평하고 싶다. 특히 살굿을 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관객들이 그 속도감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에 몰입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 편집을 통해 애매한 감정을 가질 것이다. 한편으로 당시에 그 굿을 말린 곽도원을 책망하는 관객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황정민은 왠지 듬직한 아군의 풍모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가 집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훈도시를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을 갸우뚱 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악인과 한 패라는 것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호러 걸작으로 치켜세우는 데에는 다른 호러물과의 차별성,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호러물들은 일차원의 말초적인 공포감을 주려고 노력을 한다. 사운드를 이용해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다시 평화로운 장면 등으로 이완을 시킴으로서 긴장과 이완의 반복 중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놀래킴이다. 전형적이고 얇팍한 호러물의 말초신경 건드리기이다. 여기에 자극적인 장면을 첨가한다거나 해서 눈을 추가로 자극하는 정도이다.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절대 얇팍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행위따윈 하지 않는다.(일부 있다면 좀비씬 정도?) 그것도 조금씩 조금씩 압박을 해오다가 마지막에 몰아치는 식이다. 그런식으로 관객들은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 되어 숨막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공포영화는 참 만들기도 힘들고 그 수도 많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몇 단계 다른 영역에서 놀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도 여러가지 몫을 관객들에게 맡긴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어느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거나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나는 열린 결말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수 있기에 지금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너무 일찍이 오피셜 의도를 터뜨린 것은 개인적으로 불만이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했다 해도 그게 무조건 틀렸다고 보진 않기에 오피셜에 너무 기대어 생각을 묵살해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을 2% 부족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그를 일류 감독 반열에 올려놓아도 될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날 현혹시켰으니 말이다. 그의 다음 현혹을 기대해 본다.